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영화] 바빌론 (2022) | 우리가 사랑했던 할리우드에 대한 진짜 이야기

by 김서울 Seoul Kim 2023. 3. 25.
반응형

바빌론 (2022)


꿈을 꾸는 자들의 이야기, 할리우드와 LA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 <바빌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85년생인 데이미언 셔젤은 <바빌론>에 앞서 <위플래쉬>(2013),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의 흥행을 성공시킨 스타 감독입니다. 영화 <바빌론>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8년 무렵부터 구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할리우드의 아름답고 빛나는 외면 뒤에 있는 '날것 그대로'의 1920년대 할리우드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앞서 흥행시킨 3편의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동갑내기 친구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주인공 잭 콘래드 역할에 브래드 피트, 넬리 라로이 역할에 마고 로비, 매니 토레스 역에는 디에고 칼바가 열연을 펼쳤습니다. 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로 유명한 배우 토비 맥과이어,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도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바빌론>은 2023년 3월 21일 기준 대한민국 총 관객수 209,083명을 기록했고, 2023년 3월 25일 기준 로튼토마토지수 56%, 관객 평점 52%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35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음악상, 제80회 골든 글로브 음악상,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미술상을 수상했습니다. 러닝타임은 3시간 9분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영화 <바빌론>의 줄거리, '바빌론'의 상징, 영화에 관한 영화로서의 <바빌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

영화감독으로서 LA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주인공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 분). LA에서 벌어지는 파티로 코끼리를 운반하려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코끼리 똥을 맞기도 합니다. 그 파티는 다름 아닌 영화사 키노스코프의 사장 월락이 주최한 광란의 파티였죠. 매니는 그곳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자 스타를 꿈꾸는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분)를 만납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에서 꿈을 꾸는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매니는 넬리를 몰래 파티장으로 들여보내줍니다. 그리고 난장판과 향락의 파티가 시작됩니다. 매니는 여기서 벌어지는 엄청난 어두운 일들을 잘 처리하면서, 최고 스타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제는 지고 있는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분)의 눈에 띄어 매니저로 일을 하게 됩니다.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영화계에서 인정받은 매니는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유성 영화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명작 <재즈 싱어>의 시사회에 다녀온 뒤 영감을 받아 영화 제작사 MGM에서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 분)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 성공의 반열에 오릅니다. 반면, 넬리는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으로 반짝 성공하는가 싶더니, 유성 영화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박 중독에 빠지고 맙니다. 한편, 키노스코프는 MGM 소속이던 매니에게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합니다.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키노스코프는 매니가 호감을 갖고 있던 넬리의 소속사이기도 했죠. 키노스코프로의 이적을 두고, 매니는 임원들을 모아놓고 두 가지를 설득합니다. 유성 영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미지 변신을 통해 넬리가 재기해야 하며, 시드니를 영입해 재즈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과연 매니는 자신의 판단과 같이, 지금까지 걸어오던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하고 넬리의 재기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또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할리우드에서 어떤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어떻게 엔딩을 맞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빌론'의 상징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쪽 왕국, 바빌로니아의 수도였습니다. 바빌론은 경작에 적합하고 상업적,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기에 수도로 적합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바빌로니아의 위대한 중심 도시로 여겨지며, "성스러운 도시"로 불렸습니다. 현재는 이라크 바빌 주 힐라 지역에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고대 바빌론 성벽 안에 여전히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주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바빌로니아 왕국은 단일 왕조가 아닌 도시 바빌론 일대에서 번영한 모든 왕조를 의미합니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된 성문법이자,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이 적용된 함무라비 법전을 펴낸 함무라비 대왕이 바로 고바빌로니아의 6대 왕이었죠. 함무라비 대왕은 혼란스러웠던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통일했는데, 바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지역이 '바빌로니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함무라비 대왕 이후 바빌론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8세기 무렵에는 야만적이고 난폭하기로 유명한 아사리아인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이후 기원전 625년 나보폴라사르 왕에 의해 '신바빌로니아 왕국(칼데아 왕조)'가 세워집니다. 이때, 나보폴라사르 왕은 예루살렘 전쟁에서 승리해 수많은 유대인 포로를 연행합니다. 이후 그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왕위가 돌아가는데, 그는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다 왕국이 멸망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와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성경에서는 바빌론이라는 도시가 '죄악의 도시'로 등장합니다. 많은 성서학자, 신학자들은 바빌론이 로마 제국의 잔혹함, 탐욕스러움, 이교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석합니다. 요한 묵시록 17~18장에는 대탕녀 바빌론이 악()의 상징으로 아래와 같이 묘사됩니다.

"그 여자(대탕녀 바빌론)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였습니다. 손에는 자기가 저지른 불륜의 그 역겹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긴 금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탕녀들과 역겨운 것들의 어미, 대바빌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의 신비였습니다."

 

일곱 머리의 짐승 위에 올라탄 대탕녀 바빌론
바빌론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스틸컷

 
대탕녀 바빌론이 그러하였듯, 영화 <바빌론>에서도 주인공 넬리 라로이가 새빨간 의상을 입고 등장합니다. 그녀의 등장은 영화의 첫 장면인 만큼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또 넬리는 자신의 예명인 라로이가 '왕'이라는 뜻임을 영화 속에서 밝히기도 합니다. 로마를 통치하는 사람도 역시 왕(황제)이었죠. 이와 같이, 영화 <바빌론>은 화려하게 번영했던 시기를 거쳐 몰락에 이른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도시이자, 성경에서는 악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도시 '바빌론'에 빗대어 1920년대의 할리우드를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바빌론'과 관련된 또 한 가지는 바로 미국 영화감독 케네스 앵거의 책,  『할리우드 바빌론』입니다. 이 책은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할리우드의 유명한 가십을 다룬 책이며, 내용의 특성상 수많은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10년간 출판 금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넬리 라로이의 레퍼런스이기도 한 영화배우 '클래라 보'의 자식들은 영화감독 및 작가 케네스 앵거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에 관한 영화, <바빌론>

영화 <바빌론>의 시간적 배경은 명확하며, 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봉했던 영화를 보여줍니다. 1920년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전환기에 있을 때 영화가 시작되며, 1952년 LA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가 끝나죠. 이 흐름에 맞추어 직간접적으로 (지금은 고전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등장합니다. 초반에는 할리우드 세트장에서 서부극을 촬영하는 모습을 언뜻 볼 수 있고, 본격적인 유성 영화 시대의 시작을 알린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영화 <재즈 싱어>(1927)의 시사회에 매니가 참석하기도 합니다. 1920년대 <재즈 싱어> 촬영 당시에는 흑백분리정책의 일환인 짐 크로우 법(1876~1965)이 유효한 시기였습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였던 만큼, <재즈 싱어>에는 흑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사람이 얼굴을 검게 칠해 흑인을 연기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바빌론>에서도 매니가 시드니에게 검은 얼굴 분장(블랙페이스)을 요구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납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해당 시기의 영화를 단순히 나열하기보다는, 그 시기의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매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1952년에 개봉한 스탠리 도넌, 진 켈리 감독의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1952)를 영화관에서 보고 있습니다.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보는 장면은 주인공 매니의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둘러싼 갈등의 고조와 해소는 영화의 중후반부에 있지만, 매니의 감정의 흐름은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 매니는 영화 <바빌론>에서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즉, 관객은 매니의 시점을 따라 이 영화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매니는 관객과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가 됩니다. 그렇기에 매니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은 관객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매니가 보는 <사랑은 비를 타고>가 나오는 영화관 스크린에는 <움직이는 말>, <뛰는 고양이>, <열차의 도착>, <달세계 여행>, 찰리 채플린 영화, <재즈 싱어>, <안달루시아의 개>, <오즈의 마법사>, <Duck Amuck>, <벤허>, <싸이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트론>, <터미네이터 2>, <쥬라기 공원>, <매트릭스>, <아바타> 순으로,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던 영화들이 몽타주로 스쳐갑니다. (출처) 이러한 장면들이 어떻게 매니와 관객에게 영화 <바빌론> 전체를 마무리하며 여운을 선사하는지는 실제로 영화를 보시면서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 역시도 좋아해 작년에는 '러브 인 서울' 내한 콘서트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 <바빌론>에 대해서는 국내외 평점이 상당히 낮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왜 그런지 굉장히 궁금했었는데요. 영화를 보자마자 느꼈던 건, 이전에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쪼개서 <라라랜드>, <위플래쉬>에 넣고, 각각의 영화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갈무리해서 보여줬다면, <바빌론>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들의 '총체'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자면 'LA 영화 산업의 현실', 'LA로 입성한 꿈을 가진 개인들의 변화 양상',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 등이 있을 것 같네요. 이러한 키워드를 제시하기 위해 영화 산업에 ‘음성 voice‘이 도입되기 시작한 1920년대를 선택하고, 영화의 제목과 모티프로 '바빌론'을 차용한 점도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35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음악상, 제80회 골든 글로브 음악상,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미술상을 수상한 만큼 비주얼적,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높은 평점을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라라랜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딱 스치듯 들어도 <바빌론>에서 <라라랜드> OST가 변형된 음악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라랜드>를 정말 좋아해서 10번 이상 봤는데, 음악적인 부분과 영화의 분위기, 스토리를 고려했을 때 <라라랜드>가 알록달록한 LA의 순한 맛 낭만 청춘 드라마라면, <바빌론>은 어른들이 알려주는 빨갛고 매운맛 LA의 현실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본 영화 <바빌론>에 대해, "데이미언 셔젤이 하고 싶은 이야기, 데이미언 셔젤이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을 모두 모아 만든, 할리우드의 아름답지 않음을 노래하며 할리우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역설의 영화 <바빌론>"이라는 추천평 남기며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