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8요일>, <미스터 노바디> 등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자코 반 도르말 감독의 2015년 개봉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리뷰해 보겠습니다. 원제는 <The Brand New Testament>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완전히 새로운 신약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신약성경>보다는 <이웃집에 신이 산다>라는 영화 제목이 관객 입장에서 훨씬 호기심이 생기고,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제목은 영화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원제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 문화에 맞도록 창의적으로 잘 번역한 것 같습니다. 2023년 3월 31일 기준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82%, 관객 평점 69%이며, 제73회 골든글로브상 외국어 영화상, 세자르상 외국어 영화상 등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자코 반 도르말 감독은 벨기에 사람이며 이 영화 또한 벨기에 영화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덧붙이면, 벨기에의 공용어는 3가지로,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다루며 줄거리, 연출, 블랙 코미디 장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
벨기에에 살고 있는 주인공 에아(필리 그로인 분)의 이웃집에는 GOD, 신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에아의 아빠가 바로 하나님이거든요! 신(브누아 포엘부르데 분)은 천지창조 이후, 극심한 심심함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나쁜 아빠였던 신은 아내인 여신(욜라드 모로 분)과 딸 에아를 무시하고 때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신은 한 가지 즐거운 일을 찾아내는데, 그건 바로 인간 세상에 재난과 재앙을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컴퓨터로 간단히 조작하기만 하면 인간 세상에는 비극적인 일들이 찾아오고, 할 일(?)을 끝낸 신은 소파에 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비극적인 일들이 가득 나오는 TV 뉴스를 보며 즐거워합니다. 10년째 감금되어 집에서 나가지 못했던 에아는, 그리스도상 피규어를 통해 현신한 오빠 J.C(데이빗 무르지아 분)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계획합니다. (영화의 설정상 J.C는 에아의 오빠이자 신의 아들로, Jesus Christ, 즉 예수 그리스도가 맞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아는 아버지가 인간 세상에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아빠(신)의 만행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아는 아버지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극비 자료인 인간들의 '죽는 날짜'를 인간들의 핸드폰으로 전송한 뒤 세탁기를 통해 집을 탈출합니다. 드디어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비극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으로 나온 에아. 그녀는 오빠 J.C가 모았던 12명의 사도에 더해 6명의 사도를 더 모아 새로운 신약성경을 쓰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과연 에아가 만날 사도들은 누구이며, 어떤 이야기를 새로운 신약성경에 써 내려갈 사람들일까요?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연출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실험적인 연출이 먼저 떠오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웃포커스는, 한 장면에서 중심이 되는 피사체가 선명하며, 그 주변은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장면인데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몇 장면에서 아주 강력한 아웃포커스를 적용합니다. 앞에 있는 피사체만을 선명하게 하면서, 뒤의 배경을 조금만 흐리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리게 처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포토샵에서 사용하는 블러 효과를 영화에서 거의 MAX로 줘서, 피사체 말고는 그 외의 배경이 뭔지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그 연출 장면 캡처를 이 포스팅에서 함께 보여드리면 더 좋을 텐데, 저작권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점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직접 영화를 보시면서 이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만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재미있었던 연출은, 주인공이자 신의 딸인 에아가 찾은 마지막 사도 윌리(로맹 겔린 분)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나옵니다. 어린 소년 윌리는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몸이 망가져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D-day를 기다리고 있던 윌리의 앞에 어린 소녀 에아가 나타납니다. 둘 다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일까요. 에아와 윌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같이 뺑뺑이(공식 명칭 회전무대)를 타면서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 장면의 연출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 카메라는 클로즈업과 줌아웃을 반복하면서 화자의 얼굴을 비춰주고, 다시 장면 전체를 비춰주며 교차 편집이 이뤄지는데,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마치 뺑뺑이와 함께 돌듯이 움직입니다! 360도를 같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고 있는 뺑뺑이 앞쪽에 카메라를 위치시키고, 뺑뺑이가 도는 방향으로 카메라가 스윙하듯 움직였다 제자리(가운데)로 돌아오고, 다시 스윙했다가 돌아오는 방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이런 연출을 처음 봐서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그 신선함에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 역시 영상을 첨부하면 훨씬 이해에 도움이 되겠지만, 역시 저작권 이슈로 그럴 수가 없어서 매우 아쉽습니다. 영화에서 꼭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블랙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저는 기존의 것을 비틀어 위트와 풍자를 보여주거나, 비극적인 소재와 내용을 사용해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 즉 블랙 코미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블랙 코미디 장르라면 관객 또는 평론가로부터 혹평을 받은 작품이더라도 만족스럽게 관람했던 적이 많은데요. 기존에 받아들여지고 있던, 또는 의심 없이 '그냥' 통용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블랙 코미디 장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아주 깊은 인상을 준 영화는 바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1997)입니다.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푸르스름할 정도로 하얀 빛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분위기,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 빤히 쳐다보는 두 청년의 눈, 두 청년의 눈빛이 영화 속에서부터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에게 직접 "이게 맞아?"라고 묻는 듯한 시선은, 정말이지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퍼니 게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다른 포스팅을 통해 리뷰하겠습니다.)
조금은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보면서, 전체적인 영화의 빛이 <퍼니 게임>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퍼니 게임>과 비슷하게 푸르스름할 정도로 하얀 빛의 조명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고, 주인공(신)은 단지 자신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세상에 온갖 재난과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찢어 놓은 재난과 재앙을 TV로 확인하며 즐거워하죠. 그럼에도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열심히 “보편짜증유발의 법칙”을 만들어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이를테면, 빵을 떨어뜨릴 땐 잼을 바른 쪽이 땅에 떨어진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는 항상 옆 줄이 더 빠르다 등 일상에서 짜증을 유발하는 법칙들이죠.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인간 세상에 아무런 감정 없이 비극을 창조하는 <이웃집의 신이 산다>의 신의 모습은, <퍼니 게임>의 두 청년의 눈빛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절제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쟝셴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입니다. 한 화면에 모든 설정들이 꽉 차있지 않고, 전경과 배경에는 정말 필요한 색과 소품만을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하얀', '공백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나오는 모든 인간들의 삶은 비극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블랙 '코미디' 장르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비극적인 인간의 삶을 인정하고 보여주면서도, 주인공 에아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려는 시도를 합니다. 영화는 인간들의 비극을 만들어낸 신 본인을 '보편짜증유발의 법칙'이 적용되는 비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게 하고, 인간들이 살고 있던 세상을 천국의 삶으로 바꿔버림으로써 관객에게 일종의 통쾌함을 선물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에아는 신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적인 인간들의 비극적인 삶이 쓰인 "새로운 신약성경"을 완성시킵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현실 세계를 전복해 천국의 세계로 올려놓을 뿐만 아니라 성경까지 새롭게 쓰면서, 너무도 귀엽고 깜찍한 신의 딸 에아로 하여금 인간들을 구원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관객에게 한 줌의 웃음과 위안을 선사합니다. 일상이 힘들고 짜증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사이코패스 '신'의 횡포 때문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듯한, 위트와 풍자로 보여주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는 영화입니다.
추천사
어떤 영화를 OTT 서비스로 집에서 보고 나면, '아,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했을 때 봤어야 했는데! 그때의 내가 왜 안 봤을까...' 하는 깊고도 진한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사용한 미쟝셴, 연출, 촬영이 주는 효과를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이 아닌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과 함께 말이죠. 저에겐 오늘 관람한 <이웃집에 신이 산다>, 그리고 이번 리뷰에서 인용한 <퍼니 게임>이 바로 그런 영화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웃집에 신이 산다> 개봉 당시 저는 미성년자였고, <퍼니 게임> 개봉 당시에는 아기였을 때라... 이 영화들의 가치를 알았더라도 청소년 관람 불가이므로 보지는 못했을 거라는 사실에 위안 아닌 위안이 됩니다. 인디 시네마에서라도 재개봉을 한다면, 꼭 방문해서 보고 싶은 작품 <이웃집에 신이 산다>. 다가오는 주말, 재밌으면서도 작품성 높고, 기분 좋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참신한 설정과 발칙한 상상, 실험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연출과 풍자, 한 순간도 루즈하지 않은 스토리라인까지 알차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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