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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파벨만스 (2022) |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 기억하시나요?

by 김서울 Seoul Kim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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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 (2022)

 

 
이번 포스팅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2022)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불과 며칠 전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을 본 뒤라 <파벨만스>가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두 작품 모두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메타무비)이며, LA와 영화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빌론>은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넘어가는 1920년대에서부터 시작해 1952년까지, <파벨만스>는 <바빌론>이 마무리되는 1952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를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합니다. <바빌론>에서는 주인공 매니가 1952년 개봉된 진 켈리, 스탠리 도넌 감독의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며 영화가 끝나고, <파벨만스>에서는 1952년 개봉된 또 다른 영화인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를 주인공 새미가 보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다루는 두 편의 메타 무비를 연이어 봤다는 것에 대해 아직도 기쁨과 흥분이 계속되는데요.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킬빌> 시리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으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은퇴작을 준비 중인데, 그 작품은 1970년대 후반의 LA를 배경으로 한다고 합니다. 여성 영화 평론가의 이야기를 다루며, 제목은 <The Movie Critic>이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LA를 조명하는 영화가 개봉하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커지는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다시 <파벨만스>에 대한 리뷰로 돌아와, 이 영화는 미국에서 2022년 11월 11일, 한국에서는 2023년 3월 22일 개봉했습니다.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고, 한국에서는 개봉 첫 주만에 3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023년 3월 27일 기준 로튼토마토지수 신선도 92%, 관객 평점 83%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 <파벨만스>의 줄거리, 관람 포인트, 감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이며, 영화관에서 꼭 여러분께서 관람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어서 스포일러 없이 리뷰하겠습니다.
 

 

줄거리

영화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는 새미 파벨만스(가브리엘 라벨 분)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그의 성장 스토리를 따라갑니다. 어린 새미에게는 너무나도 다른 성향의 부모님이 있습니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 어머니 미치 파벨만(미셸 윌리엄스 분)과, 뼛속까지 이과생이자 공학도인 컴퓨터 개발자 아버지 버트 파벨만(폴 다노 분)이었죠. 영화는 1952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새미의 부모님은 어린아이에게 영화를 보여주면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새미를 데리고 영화관으로 갑니다. 1952년 개봉한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가 상영 중이었죠.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새미. 영화관 안은 어둡고, 큰 소리가 나오고, 화면에 실제보다 큰 세상이 보인다는 말에 겁을 먹고 들어가지 않겠다며 울상을 짓습니다. 그런 새미에게 부모님은 "Movies are dream.(영화는 꿈과 같아)."이라며 설득합니다. 결국 영화관에 들어간 새미는 순식간에 화면 속 커다란 세계에 매료됩니다. 새미가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죠.
 

 
그날 이후, 새미는 8mm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서부극,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 영화, 가족 캠프 영상, 학교 졸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하여, 사람들을 모아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기술이 발전해 가고, 이에 발맞추어 새미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촬영 장비도 변화해 갑니다. 한편, 기술의 발전은 곧 컴퓨터 개발자인 아버지의 잦은 이직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IT 산업의 중심지가 변화하면서,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버지에게 더 큰 회사들이 계속해서 스카우트 제의를 보냈던 거죠. 여러 번의 이사 끝에, 새미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새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정착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었던 새미에게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청춘인 새미에게 설레는 첫사랑이 찾아오기도 하죠.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는 학교 생활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테지만, 새미는 너무나도 다른 성향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도 심리적인 갈등을 겪게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새미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는데요. 새미의 어머니는 가슴이 시키는 것을 따라가야 한다며, 새미가 영화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새미의 아버지는 '실제와 관련이 있는 것, 실생활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며 자신과 같은 공학도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시간이 흘러 새미는 아버지의 뜻대로 대학에 진학하지만, 자신의 흥미와 전혀 관계없는 대학에의 적응이 어려웠던 새미는 공황 발작까지 겪게 됩니다.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해 이곳저곳 이력서를 보내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답장은 오지 않습니다. 공황으로 괴로워하던 새미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말합니다. "시간은 너무 빨리 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과연 새미는 자신이 간절히 꿈꾸던 영화인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영화 <파벨만스>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관람 포인트

영화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룹니다. <뮌헨>(2005), <링컨>(2012) 등 스필버그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함께한 바 있는 각본가 토니 커쉬너가 스필버그 감독과 공동 각본을 맡았는데요. <뮌헨> 촬영 당시 스필버그 감독이 토니 커쉬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상담사에게 이야기하듯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토니 커쉬너가 그 이야기들을 영화화하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파벨만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은 모두 실화에 기반하며, 영화 속에서 새미가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스필버그 감독이 실제로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합쳐져 탄생한 영화 <파벨만스>는 정말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가족과 예술, 청소년기 사랑의 좌절, 학창 시절 괴롭힘의 극복, 현실과 영화, 꿈과 좌절 등의 클리셰(cleché)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영화와 문학에서 다뤄져, 자칫 신선함과 새로움이 부족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는 이 모든 소재들을 넣으면서도 전혀 진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클리셰들을 어떻게 영화에서 완성도 높게 구현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1950년대 초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이뤄진 기술적 발전을 배경으로, 새미 가족의 서사와 새미가 꿈꾸는 영화와 관련된 서사를 마치 직물을 엮어내듯 섬세하게 보여주며, 새미 개인이 겪는 심리적 갈등, 그리고 새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아프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고도 애틋하고 아린 청춘의 기억까지 꺼내 보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2시간 31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 새미를 둘러싼 모든 스토리와 함께 영화에 관한 이야기, 새미 주변 인물들의 서사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해 보겠습니다. <파벨만스>는 분명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새미는 성장 과정에서 (지금은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거나 언급합니다. 1952년 개봉한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를 시작으로, 서부극의 대부인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극장에서 관람하며, 가족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는 1927년 발성 영화 시대의 시작을 알린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재즈 싱어>, 1903년 개봉한 에드윈 S. 포터 감독의 작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톰아저씨의 오두막>은 우리가 아는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해리엇 비처 스토가 쓴 흑인 노예 제도의 참상을 다룬 소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미는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어떤 감독과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스토리를 말씀드리면 아주 큰 스포일러가 되므로 이 포스팅에 적지는 않겠습니다. 영화 <파벨만스>는 기승전결 중 어느 한 군데도 나무랄 데 없이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영화이지만, 특히 엔딩 부분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중에 그 엔딩 장면이 나왔을 대, 정말 기뻐서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꼭, 영화관에 가셔서 <파벨만스>의 최고의 엔딩,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새미의 주변 인물 또한 영화 <파벨만스>에서 주요한 관람 포인트입니다. 이 영화는 새미뿐 아니라 새미의 주변 인물의 서사까지 일말의 부족함 없이 다룹니다. 신경증적이고 감정적이지만 사랑스러움 그 자체인 어머니, 전형적인 이과 공학도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강했던 아버지,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새미 동생들의 이야기(영화에서 새미에게는 3명의 여동생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스필버그 감독에게도 3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어렸을 때 악동으로 소문날 정도로 스필버그는 동생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우애 좋기로 소문난 남매라고 하네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새미를 괴롭히는 친구들, 새미의 첫사랑 등 여러 주변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새미에게 때로 상처가 되고, 때로는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변인들의 서사, 주변인들과 새미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영화 <파벨만스>는 감독으로서 새미가 어떻게 그들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관점까지 보여줍니다. 이것은 곧 '영화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현실과 영화"라는 오래도록 논의되어 온 주제와 연결됩니다. 뿐만 아니라, 배우가 겪는 현실과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의 고뇌까지도 굉장히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파벨만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1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도 이토록 많은 주제를 전혀 모자람 없이 탄탄하게, 높은 개연성과 연출로 풀어냈다는 것에 아직도 놀라움을 멈출 수가 없네요.
 

 

추천사

영화 <파벨만스>를 보면, 각 에피소드는 대부분 비극이지만 영화가 끝나면 왠지 모를 뭉클함과 애틋함, 사랑스러움과 같은 희망적인 기분이 차오르는 신기한 감정이 찾아옵니다. 이 또한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의 인생을 다룬 영화를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였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현실의 단편과, 영화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단편 조각들의 나열은 관객에게 각각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적 완결성,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편집과 연출의 높은 완성도, 완벽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엔딩 장면까지, 영화 <파벨만스>는 단연 2023년 관람한 최고의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영화 <파벨만스>는 극장에서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관람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이토록 완성도 높은 영화를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사랑, 우정, 가족, 예술 등의 평범한 소재를 갖고도 이토록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 스필버그 감독의 역량에 아직도 그 놀라움이 남아있네요. 그럼, 영화 <파벨만스>에 대해 "영화에 관한 영화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이라는 한 줄 평과 5점 만점에 5점이라는 별점도 남기며 이번 포스팅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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