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 <더 퍼스트 슬램덩크>, <타이타닉>의 연이은 개봉으로 극장가의 열기가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새 앤트맨과 와스프만 남겨두고 있네요. 어제는 <타이타닉 4k 3D 리마스터링>을 보고 왔습니다. 1997년 개봉(한국에서는 1998년 개봉)했던 작품을 개봉 25주년을 맞아 4k 화질, 3D로 리마스터한 작품이죠. 워낙 고전 명작으로 유명한 영화라 큰 기대를 하고 봤는데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얻고 왔어요. 이 영화를 볼까 고민하느라 이 포스팅을 보고 계신다면, 더 고민하지 말고 바로 예매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OTT 서비스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영화관 영화의 감동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에겐 이 영화를 본 날이 애틋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마음 한편에 계속 남아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4일, 영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중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한 RMS 타이타닉 호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꿈의 배라는 애칭을 갖고 있던 타이타닉 호는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며 불침선으로도 불렸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이뤄낸 성장에 들떠있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같았죠. 이런 분위기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의상과 호화로운 연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소위 불침선 안에서 상류층 귀족들은 화려한 중세 복장을 입고 연회를 즐기고 있습니다.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과도기적 시대였죠. 1909년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은 당시 경쟁사였던 커나드(Cunard)를 견제하며 타이타닉 호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속도와 269m의 거대한 크기, 호화로운 내부 인테리어로 타이타닉 호는 '백만장자의 배'라며 유명세를 탑니다.
그로부터 3년 뒤, 1912년 타이타닉 호는 역사적인 첫 항해를 시작합니다. 타이타닉 호의 탑승한 약 2,2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영국 사우스 햄튼에서 출발해서 아일랜드 퀸즈타운을 마지막으로 유럽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죠. 첫 항해인 만큼, 이 배에는 기획과 설계를 담당했던 관계자들이 탑승해 있었는데요. 바로 영화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화이트 스타 라인의 사장 이즈메이와 배의 설계 총책임자 앤드류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배에는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상류층들과,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꿈의 나라로 떠나려는 이등석, 삼등석 칸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영화 타이타닉은 몰락한 영국 귀족의 딸인 로즈 드윗 뷰케터(케이트 윈슬렛)와 미국 위스콘신 출신의 무일푼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갑니다.
로즈는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당시 여성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가문을 살려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압에 못 이겨 칼 허클리(빌리 제인)와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었죠.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좌절하던 로즈는 타이타닉 호의 난간에 매달려 바다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잭이 그 장면을 보게 되고, 특유의 말재주로 로즈를 설득해 다시 갑판 위로 올라오도록 합니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했지만 서로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 쉽게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계급의 차이, 그리고 로즈의 약혼 상태 때문이었죠. 그러나 항해가 계속되면서 로즈와 잭은 점차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갑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에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로즈는 자유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섭니다. 로즈에게 잭과의 만남은 곧 자유에 눈을 뜨는 계기였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곧 자유의 시간,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 삶을 만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잭은 온갖 사회적 규범과 현실의 압박에 눈이 멀어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던 로즈가 스스로의 빛을 찾아 삶의 주인으로 살도록 구원해 준 사람이었던 거죠.
이런 그들의 관계는 타이타닉의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장면, 잭과 로즈가 뱃머리에 함께 선 장면에 응축되어 표현됩니다. 잭은 로즈가 뱃머리에 서서 자유를 느끼도록 응원하고 도와주며, 그녀가 새처럼 날 수 있는 존재라며 자유에 대한 감각을 깨워줍니다. 이 장면은 타이타닉의 전체적인 서사를 한 데 모아 정리하도록 은유를 담아 치밀하게 연출됐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맥락 위에 올려진 그 장면의 감동은 스틸컷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였어요. 로즈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자각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더 이상 가문과 낡은 사회 규범이 아닌, 그녀 자신과 그녀의 열정, 사랑이었습니다. 출항한 지 4일째 되는 날, 타이타닉 호 앞에는 갑작스럽게 거대한 암초가 나타납니다. 실제로 암초가 발견된 4월 14일 밤, 대서양은 유난히 평화롭고 잠잠했고, 바다 상태를 주시하며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두 명의 승무원도 쌍안경을 잃어버려 맨 눈으로 감시하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두 사람이 등장하죠. 당시 상황을 보고받은 일등 항해사 머독은 좌현으로 키를 돌리고, 전속으로 후진하며 속도를 늦추라고 지시합니다. 타이타닉 호는 이윽고 암초를 지나지만, 그 과정에서 우현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큰 손상으로 묘사되나 실제로는 1.1~1.2 제곱미터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배의 설계자 앤드류는 손상으로 인해 이미 5 구획까지 누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거라고 판단합니다. 영화에서 이 배는 4 구획까지 물이 차도 버틸 수 있는 불침선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충돌로 인해 5 구획까지 누수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침몰의 임계점은 이미 지나버렸던 것이죠. 선장 스미스는 조타수 2명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것을 지시하며 타이타닉 호를 멈춰세웁니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구명정에 태우며 탈출 작전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배의 모든 구명정을 합쳐도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1,178명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해양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구명정을 갖고 있었으나, 각 구명정의 최대 수용 인원이 적었던 것이죠.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던 약 2,200명 전원의 반 정도만이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타이타닉 호의 승무원들은 안전 대피 훈련을 진행하지 않아 구명정을 내리는 도르래의 내구성을 파악하지 못해 무거운 구명정으로 인한 파손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대 65명을 태울 수 있는 구명정임에도 27명 만을 태워 내려보내기도 합니다. 그날 구명정을 통해 탈출한 사람은 약 705명에 불과했습니다. 구명정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배의 침몰과 함께 차가운 바다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로즈와 잭 역시 구명정을 타지 못합니다. 바다에 떠 있는 잔해를 겨우 붙잡았지만 그곳에는 한 사람만이 올라갈 수 있었죠. 남는 좌석이 있음에도 자신들을 두고 떠난 구명정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잭은 로즈에게 자기 자신을 믿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을 말하며 차가운 바닷속에서 눈을 감습니다. 당시 바다의 수온은 영하 2℃였고, 실제로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그 추위에 대해 '천 자루의 칼로 몸을 찌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잭이 바닷물의 추위를 '수천 개의 칼이 피부를 찌르는 듯' 하다고 묘사하죠. 잔해 위에서 저체온증으로부터 간신히 버티고 있던 로즈는 결국 조난 신호를 듣고 달려온 카르파티아 호에 의해 구조되고, 자신을 구원한 잭 도슨의 성을 따라 스스로를 로즈 도슨으로 살기를 결심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포스팅을 작성하기 위해 실제 사건을 알아보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역사적 고증을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잭과 로즈의 로맨스는 분명 허구가 맞지만 그들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 등장인물, 침몰 사건의 진행 경과 등이 실제 사건과 너무도 깊이 맞닿아 있어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굵직한 유사점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에서 지나가듯 던지는 사소한 대사 하나하나에서도 시대적 배경이 드러납니다. 철저한 고증 속에서도 로즈와 잭의 로맨스도 놓치지 않았고, 당시 억압받던 여성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비중 있게 담아냈습니다. 영상미, 연출에 대해 말하자면 두 말 필요 없이 교과서 같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역시 명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3D여서 멀미나 부자연스러움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왜 3D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OST가 나오는데, 꼭 끝까지 듣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영화 속에서 잭이 로즈에게 건넨 메시지로 오늘 포스팅 마무리하겠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길."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코코 (2017) | 기억으로 연결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0) | 2023.03.20 |
---|---|
[영화] 프란시스 하 (2012) | 진심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청춘에 바치는 찬가 (2) | 2023.03.18 |
[영화] 전함 포템킨 (1925) | 최초의 몽타주 기법, 영화의 교과서 (1) | 2023.03.17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 혼돈의 시대 속 빛나는 친절의 힘 (개요, 줄거리, 3가지 관람 포인트, 추천) (0) | 2023.03.15 |
[영화] 바톤 핑크 (1992) | 실패의 여정으로 폭로되는 LA 영화 산업의 현실 (줄거리 포함) (0) | 2023.0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