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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소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 사회적으로 금지된 담론은 이야기될 수 없는가

by 김서울 Seoul Kim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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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저서 『단순한 열정』을 리뷰하겠습니다. 『단순한 열정』은 1991년 출간 당시 노골적인 성적 묘사, 불륜이라는 소재의 차용 등으로 프랑스 독서계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2022년,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로 재평가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녀는 『삶을 쓰다』, 『부끄러움』, 『자리』 등의 저서를 통해 현실을 경험한 그대로 담아내며, 부모와의 관계 및 아비투스에 대한 인식, 그 가운데 생겨난 죄의식과 부채 의식에 대해 애도 작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열정』에서는 이전의 흐름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감정을 나열하는 것 이외에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외재적 목적)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무언가를 목적하는 글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툭 내놓은 글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인생을 내어 준 사람의 내면을, 화려한 수식어구의 보탬 없이 경험 그대로 담담히 그려낼 뿐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열정』은 분명 외설적이라고는 평가될 수 있으나, 결코 자극적이거나 경박스럽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단순한 열정』, 66p.)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이다.(『단순한 열정』, 10p.)"

 

 

『단순한 열정』은 60여 페이지의 짧은 단편이며, 짧은 문장으로 구성됩니다. 또 내면 독백이 주를 이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결코 단순하거나 짧지 않습니다. 『단순한 열정』은 서문에서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 둘』 잡지는 사드보다 더 외설스럽다.(단순한 열정, 7p)” 여기서 사드는 ‘사디즘’으로 유명한  프랑스 귀족 출신 작가 프랑수아 드 사드 후작(1740~1814)을 의미합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사디즘은 사드 후작 이전부터 있던 단어이나, 사드 후작의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스캔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드 후작이 '사디즘'의 대표 격이 되었습니다. 즉, 사디즘은 사드 후작 이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사드 후작이 행한 엽기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는 '가학'이 아닌 '공포'에 의한 쾌락이라는 점에서 사디즘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디즘은 '가학' 자체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참고자료)

 

작가는 『단순한 열정』에 쓰인 모든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에 기반하며, 허구의 것을 배제하기 위해 철저히 노력했다고 밝힙니다. 또 이 책이 그녀보다 열세 살 어린 외교관과 일어났던 실제 불륜 스캔들에 대해 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큰 파문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스캔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 감명을 받아 아니 에르노의 팬이 된 33살 연하의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이 아니 에르노와 사랑에 빠져 5년간 연애를 하고, 『단순한 열정』과 비슷한 문체와 흐름의 저서 『포옹』을 출간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소설, 에세이 등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적어내는 것은 체험에서 비롯된 경험 그 자체로, '글'이 아닌 다른 어떠한 장르로 분류할 수 없다고 주장했죠. 그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도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녀의 소설을 자전적 소설(오토픽션)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단순한 열정』, 11p.)"

『단순한 열정』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글이 끝날 때까지 그녀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에 대해 내면 심리를 묘사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오직 하나의 대상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사랑 이외에는 것은 모두 그녀에게 허무이자 무의미였죠.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불륜이라는 사실과, 불륜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책의 앞머리에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문장을 넣음으로써 자신의 책이 소재(불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가르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당부합니다. 또 독자가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음도 암시하죠.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사랑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음을 인식한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불륜 상대에 대해 ’배려'를 강화하는 아이러니함을 낳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욕망해서는 안 될 것을 욕망하고 있고,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을 더욱 배려하고 존중합니다. 주인공은 그저 상대방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길 바라며, 언젠가 자신을 원할 때까지 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삶의 주체가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전도되어 버린 셈이죠. 이 책에서 주인공이 하고 있는 사랑은 가히 병적이며, 신경증적이고, 지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열정』을 서술 층위에서 논의할 경우 ‘불륜은 옳지 않다’는 도덕성 논란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없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옳지 않다'로 합치되며, 『단순한 열정』은 부도덕한 불륜 로맨스라는 혹평 속에서 쉽게 잊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열정』은 서술 층위를 벗어난 '담론'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작가는 문제적 작품인 『단순한 열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금지된 담론은 논의될 자격이 없는가'라는 대담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곧, 사회적으로 부정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서는 안 되는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글로 쓰여서는 안 되는가, 또는 책으로 출판되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확장이 가능한 이유는, 아니 에르노가 이 책에서 자신의 도덕성을 합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도덕적 판단을 유예시키고 자신에게 떠오르는 순간의 감정들을 나열하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들의 단편만을 고려했을 때, 분명 이 책은 사랑으로 불리는 감정의 한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측면은 사랑이 가져오는 자기 파괴적 속성, 뒤틀린 사랑을 하는 사람의 심리적 갈등, 사랑으로 인한 자아의 상실 등 그간 여타 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야기로부터 소외되어 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학 평론가 이재룡 또한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단순한 열정』, 86p.)"라고 아니 에르노의 글을 평가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배경 소개, 간단한 줄거리 소개, 문제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높은 작품성의 글(오토픽션)로 평가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문제적 작품인 만큼 리뷰를 쓰면서도 조심스럽고, 추천 여부에 대해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어느 정도 불편함과 거리감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책의 내용을 수용하고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유형의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책과 거리를 두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비판하는 독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며, 이번 포스팅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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