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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3 인디스페이스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

[영화] 다음 소희 (2022) | 차가운 세상, 소희의 구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by 김서울 Seoul Kim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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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2022)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평소에 나는 감정에 심한 동요를 주는 작품을 잘 보지 못한다. 특히 그것이 비극적인 실화에 기반하면 더욱 그렇다. 일어나서는 안 될 현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다시금 확인하고 좌절감과 무력감에 오래 빠져 일상에 꽤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좌절감, 무력감을 이겨내기도 쉽지 않지만, 동시에 이런 기분을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꼭 봐야 하지만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상당한데, 그중 하나가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2022)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던 중, 띵동 하고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2023 인디스페이스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이렇게 간간이 올리는 영화 관련 글은 비평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글솜씨지만, 어떠한 사업에 선정되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처음이라 굉장히 영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 몇 달을 보지 못하면서 마음속 부채로만 간직하고 있던 작품, <다음 소희>를 관람하고 왔다.
 

<다음 소희> 줄거리

 
줄거리 소개에 앞서,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전주에서 일어난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밝힌다.(관련 사건 정보) 특성화고 애견학과 학생인 김소희(김시은 분)는 어느 날 담임선생의 호출을 받는다. 대기업 콜센터로 취업 연계가 되었다는 것. 이미 소희의 친구들 중 일부는 취업 연계가 되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일을 하다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담임선생은 소희에게 '내가 처음으로 대기업을 뚫었다'며 열심히 일 할 것을 당부한다.
 
콜센터로 출근을 시작한 소희는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깜짝 놀란다. 소희가 하는 일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었다. 통신사 서비스 해지를 위해 전화를 거는 고객을 상대로 해지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어'를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방어를 성공시킨 건수가 바로 직원들의 실적이었다. 개인과 팀의 실적 달성을 위해 직원들은 고객의 고성, 폭언, 심지어는 성희롱까지 견뎌내고 있었다.
 

 
소희는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와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낸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친구들과 웃으며 놀고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생각하며 이내 마음을 비우고 일에 집중하려 애쓴다. 한편, 콜센터 직원들이 업무 중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팀장(심희섭 분)이 지원을 하곤 했는데, 하루는 팀장이 한 직원이 듣던 폭언을 듣다 못해 폭발해 고객에게 욕설과 고성을 지른다. 그 고객은 본사에 컴플레인을 넣었고, 회사는 팀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팀장은 회사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장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채 차 안에서 발견된다.
 
회사는 팀장의 죽음을 개인적 결함으로 인한 사건으로 축소하고 은폐하려 한다. 직원들에게 팀장의 죽음이 회사와 관련이 없다는 성명서에 강제로 서명을 하게 하고, 경찰은 해당 사건을 덮어버렸다.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려 했던 소희도 결국 새로운 팀장의 압박에 서명을 한다. 이후 한동안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소희는 돌연 인센티브를 받겠다며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더욱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다.
 

 
실적으로 뒤에서 2등이던 소희는 매일 같은 야근으로 어느새 1등을 달성한다. 그리고 다가온 월급날, 급여명세서를 본 소희는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의 실적과 초과 근무에 대한 보상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새로운 팀장에게 따지러 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현장 실습생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2~3달 뒤에 준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좌절한 소희는 그날부터 방어를 하지 않는다. 해지 문의를 준 고객에게는 해지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소희를 불렀다. 가족과 관련된 말로 자극하는 팀장에게 소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고, 징계로 3일의 무급 휴가를 받는다.
 
3일 동안 소희는 잠을 잤고, 친구를 만났다. 그만두면 안 되냐고 가족과 학교,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고도 미약하게 물어보았다. 아무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소희는 그러면 안 된다는 대답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미 소희의 마음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렸고, 소희는 직장이 아닌 자기 자신을 포기하기로 한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소희의 시체. 담당 형사(배두나 분)는 소희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관련 기관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다음 소희> 비평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돌아간다. 누군가는 생산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한 개인이 동시에 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을 멈추었다가 다시 수행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존재는 결국 생산과 소비로 드러난다. 그 두 가지가 오랜 기간 동안 멈춰 있다면, 그 개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의 집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라는 개념으로 개인의 생존 여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은, 그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행복과 안위에 관심을 둬야 할 의무를 면제받는다. 개인의 안부를 묻지 않는 사회는 생산과 소비, 즉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조명하고 세상에 알린 건 언제나 문학이고 예술이었다. 그리고 영화 <다음 소희>는 故홍수연 양의 삶을 조명해 세상에게 이 사건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연신 당부한다.
 

 
 
소희의 죽음은 분명 자살이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타살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자정 능력이 떨어질 때 그 시스템에서의 약자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떻게 사회의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어린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있어선 안 될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회 속 어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존재하는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이 속한 사회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존재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때로는 투표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어느 정도 사회에 제시하며 살아간다. 더 사소하게는 우리가 누르는 좋아요나 댓글, 구매하고 사용하는 물건들, 시청하는 콘텐츠들 또한 그 자체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사회 구조적으로 발생한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은 가해자, 피해자가 아니면 방관자이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나와는 관련이 전혀 없는 일일 수는 없다.
 

 
소희의 사건을 맡았던 형사(배두나 분) 역시 그랬다. 자기 자신은 소희의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삼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희가 죽기 전, 형사는 소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가 그 형사와 그 소희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춤을 추는 모임에서 스치듯 만났다. 오랜만에 모임에 방문한 소희에게 형사는 아무런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삶이 힘겨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소희의 죽음 이후, 관련 정황을 파악하던 형사는 소희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관련 기관과 담당자들을 찾아다닌다. 그 누구도 잘못을 느끼지 않는다. 그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한다. 그 누구도 소희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외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소희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형사가 찾아간 건 자기 자신이었다. 이 모든 일과 관련이 없는 제삼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방관자였던 자기 자신.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춤을 추며 행복해하던 아이가 왜 요즘은 춤을 추러 나오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았던 자기 자신. 나의 삶도 버거워서 다른 누군가와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려 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 오랜만에 찾아와 밝게 웃던 소희에게 따뜻한 웃음 지어주지 못했던 자기 자신. 결국 영화에서 형사는 소희의 사건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다. 거대한 사회 구조의 구성원 하나하나에게 쪼개져 분담된 책임은 희석되어 사라져 버린 뒤였다.
 

 
이처럼 영화 <다음 소희>는 소희의 문제가 결코 소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 이러한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더욱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가 우는 장면은 그 아픔이 증폭되어 관객에게 전달되고, 영화의 제목인 '다음 소희'라는 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소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낼 줄 알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다. 어른스러웠다. 그러나 소희는 아이였고 학생이었다. 소희가 죽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미성년자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회 시스템이 오히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속한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내가 한 말과 행동,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일들과 조각조각 모여 시공간 너머의 다른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기도, 또는 삶을 포기할 이유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옳음과 옳지 않음에 대해 더욱 깨어 있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다시 생각해도 가슴 시리도록 아픈 소희의 이야기. 맑게 웃으며 춤을 추던 아이. 소희의 구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현실에선 소희의 마음이 다 타버릴 때까지 구원은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소희에게는. 나는 다음 소희에게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바라보고 거리낌 없이 써낼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어 그들에게 조그마한 용기와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고, 멈춰야겠다고 생각할 때 멈춰도 괜찮다고 말하는 회사를 꿈꾼다. 침묵하는 법이 아닌, 깊이 사유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를 꿈꾼다. 버티는 삶이 아닌 즐기는 삶을 살자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꿈꾼다. 너무 힘드니 도와달라고 기꺼이 손을 내밀고,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거리낌 없이 응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를 꿈꾼다. 경쟁보다는 공존을, 순위보다는 행복을 더 높은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회를 꿈꾼다.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세상에 등 떠밀려 삶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2023 인디스페이스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을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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